[무적당유고 無適堂遺稿] 필사본으로 홍명형(洪命亨, 1581~1636)의 유고 원고본(原稿本)이다.
생전 저술이 많았으나 스스로 초고를 소각하거나 병란(丙子胡亂)으로 대부분 산일(散逸)되었다. 현재 전하는 것은 [무적당유고 無適堂遺稿]가 거의 유일하다.
홍명형은 조선중기 광해군~인조 때 활동한 문신으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충신이다. 자는 계통(季通), 호는 무적당(無適堂)이며, 본관은 남양(南陽, 당홍)이다.
광해군4년(1612) 32세로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성균관 전적·호조 좌랑·북청판관·공조정랑 등을 역임했으나, 광해군 대 말기에는 경성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교외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1634년 성절사가 되어 해로(海路)로 명나라에 갔다가 등주(登州)에서 명나라 부총병 정룡을 만났다. 정룡은 조선과 명나라가 후금을 협공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귀국 후 인조에게 이를 보고하자 인조는 명나라 관리를 사사로이 만난 것을 문제 삼아 그를 파직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홍명형은 중추부에 임용되어 승문원 부제조를 겸임하고 있었다. 강화도로 피난하면서 장남에게 "종사의 신령이 영험함이 있다면 나도 살아남을 것이고, 불행히 그렇지 못하면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홍명형은 강화도 방어의 허점을 정확히 예견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신이 나무 물통을 엮어 강을 건넌 고사를 언급하며 걱정하였는데, 사람들은 그가 망언을 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청나라 군사는 작은 배를 연결하여 갑진(甲津)을 건너왔고 강화도는 곧 함락되었다. 1637년 1월 22일 홍명형은 전 우의정 김상용·이시직 등과 함께 남문루(南門樓)에서 폭사(暴死)하여 57세로 순절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의열(義烈)이다.
유고의 주요 목차는 다음과 같다.
- ‘到石多山寄張方伯’ 등 詩 15수
- ‘題光州風詠亭䪨’
- ‘贈 天使程副摠龍’
- ‘絶纓’
- ‘哀武關’
- ‘敎江原道觀察使朴潢書’
- ‘鐵山哨大洋祭水神文’
- 無適堂家狀‘
- ‘義烈公諡狀’
- ‘江華留守宋成明上疏’
- ‘追配忠烈祠祭文’
- ‘崇禎十五年壬午正月十四日江華儒生通文’
- ‘忠烈祠 賜祭祭文’
- ‘無適堂洪公死節事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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