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에 ‘歲庚子(1780)安東權*書’, 권말에 ‘崇禎紀元後三甲辰(1784)李憲洛(1718∼1791)識’가 있다.
○ 최천익 (崔天翼, 1710~1779)
조선후기 [농수고], [농수집] 등을 저술한 여항시인이다. 자는 진숙(晉叔), 호는 농수(農叟). 아버지는 흥해의 아전이었던 준걸(俊傑)이다.
어려서 같은 고을의 운와(耘窩)라는 사람에게 배웠으며, 이형상(李衡祥)에게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집안 대대로 흥해의 군리(郡吏)였는데, 그만은 열심히 공부해서 진사시에 급제했다. 그러나 진사시에 급제하자 분수에 족하다고 하면서 다시는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군리로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방으로 배우러 다니며 학문에 힘썼다.
만년의 30여 년 동안은 후진을 양성하며 보냈다. 그의 문하에서 유인복(柳寅福)·최기대(崔基大)와 같은 인물이 배출됐다. 외지고 작은 마을인 흥해에서 이름 높은 선비들이 그 뒤에 많이 배출된 것은 최천익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시문에 능하여 성대중(成大中)·신유한(申維翰) 등 당대의 일류 문사들과 교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