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表題) : [구선방(求仙方)(전면)/[활인방(活人方)](후면)
조선후기(18세기말~19세기 추정),
14.7×9.4cm, 절첩 필사본(1첩(帖) 26절(양면 각 26면, 총 52면)
표지 : 감색 능화판 압인 능화문지(菱花紋紙), 종이 제첨(題籤) 부착
(1)도포 자락 소매(袖) 속에 쏙 들어가는 이 손바닥만 한 수진본(袖珍本)은 조선후기 민간의 일상과 긴밀히 맞닿아 있던 휴대용 비상 약방이다.
이 책은 병풍처럼 접고 펼치는 절첩(折帖) 구조를 취하여 위급하거나 필요한 처방을 즉각 펼쳐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흥미롭게도 책의 앞면과 뒷면은 각각 독립된 표제를 지닌 두 권의 의서로 기능한다. 앞면을 펼치면 불로장생과 무병장수를 염원하는 양생의 비전인 [구선방(求仙方)]이, 뒤집어 펼치면 일상 속 급성 질환과 고통을 다스리는 치료의 지혜인 [활인방(活人方)]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명을 기르는 ‘양생(養生)’과 병을 고치는 ‘활인(活人)’이라는 한의학의 두 핵심 축이 양면 26절, 총 52면의 지면 위에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본 유물이 지닌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전문 의학 지식을 순한글 위주의 언해 체계로 온전히 풀어냈다는 점에 있다. 한문 원문을 그대로 나열하는 대신 ‘산 지(산수유)’, ‘말린 (건삼)’과 같은 정겨운 향약명과 토박이말로 약재를 적고, 조제법과 복용 금기 사항을 당대 일상 구어체로 친절히 기록하였다. 나아가 단락마다 주묵(朱墨)으로 단정하게 테두리와 방점을 찍어 시각적 가독성을 높였으며, 권말에는 뜸자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동심원 도식까지 곁들여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2) 국어학적(한글) 특징
① 조선후기 근대 국어 음운 및 표기 체계의 보존
- ‘ㆍ(아래아)’의 동요와 혼용 : 지면 전반에 걸쳐 ‘어’, ‘’, ‘초 라’, ‘머그면’ 등 18~19세기 과도기적 음운 및 표기 양상이 충실히 보존되어 있다.
- 구개음화 전후 및 형태음소론적 표기 혼재 : ‘뎜은’, ‘듸라’와 같은 구개음화 미반영 형태와 ‘삼괴디 말라(삼키지 말라)’, ‘굳어디니라(단단해지느니라)’ 등 일상 회화체의 명령·설명형 종결어미가 분철과 연철을 오가며 생생하게 드러난다.
② 향약명과 토박이말을 통한 의학 지식의 자국어화
- 전문 한문 의서의 난해한 본초(本草) 명칭 대신 민간에서 통용되던 순우리말 약재명(예: 산수유를 가리키는 ‘산 지’, 족도리풀 뿌리를 이르는 ‘세신’, 말린 인삼인 ‘말린 ’)으로 음차·훈차하여 기록했다.
- 탕전·환제 제조법과 복용 지침을 “붓으로 거 니 밋 르고 침을 밧고 침을 괴디 말라”, “하 백 번 븡 물의 칠십 븡식 복용되”와 같이 구어체로 상세히 풀이하여, 한문을 모르는 부녀자나 일반인도 오류 없이 약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③ 가독성을 극대화한 조판과 정갈한 필치
처방 제목마다 주묵(붉은 먹)으로 정방형 테두리를 두르고, 문장의 구두점과 중요 지점에 붉은 권점(圈點)을 가칠하여 필요한 조항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궁체 흘림과 단정한 민체가 결합된 필사 서체는 조선후기 한글 서예사 연구에도 훌륭한 기준을 제공한다.
(3) 한의학 및 의학사적 가치
① 구선(求仙)과 활인(活人)의 이원적 조화
- 전면 [구선방(求仙方)] : 도가적 신선 양생술과 전통 한의학의 보혈·보기 처방(인삼, 복령, 산수유 등)을 융합하였다. “사십 만 머그면 늙은 사이 졈어지고 거믄 머리 다시 나고 진 니 다시 나고 세를 사 신방”이라는 서술처럼, 노화 방지와 장수를 지향하는 양생 비전(秘傳)을 체계화했다.
- 후면 [활인방(活人方)] : 풍증, 치통, 두통, 설사, 적취 등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마주치는 질환을 다스리는 실용적 경험 처방을 집약했다. 특히 백반·세신·고삼을 곱게 갈아 붓으로 잇몸에 바르는 [고치방문(固齒方文)]과 같은 외치법(外治法)은 민간 구급 의학의 실전성을 잘 보여준다.
② 비전(秘傳) 뜸자리(구법, 灸法)의 시각화
- [구선방] 권말에 묵서로 그려진 3중 동심원 도식은 배꼽(신궐혈)과 주변 경혈(사화혈 등)을 상징화한 복부 혈자리도이다.
- “복(설사)거나 젹취(적취) 잇 사은 이 듸를 뎡야 면 됴코”라는 설명문과 함께 뜸을 뜨는 장수(壯數)와 위치를 시각적으로 명시하여, 전문 침구사가 없는 가정 내에서도 안전하고 정확하게 뜸을 뜰 수 있도록 도왔다.
(4) 맺는 말
본 [구선방·활인방]은 소장자의 품격을 드러내는 고급 능화문지 표지와 정교한 절첩 장정, 주묵을 활용한 현대적 감각의 편집 디자인, 그리고 깊이 있는 한글 언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수작이다.
조선후기 한글이 사대부가의 규방과 민간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아 고도의 전문지식인 의학을 완벽히 수용하고 전파하는 매개체였음을 웅변하는 유물로서, 국어학·서지학·의학사·민속학 등 다방면에 걸쳐 매우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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